작성일 : 09-07-07 17:01
[경전공부방] [초발심자경문] 발심수행장 3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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慳貪於物은 是魔眷屬이요
간탐어물   시마권속

慈悲布施는 是法王子라.
자비보시   시법왕자

高嶽莪巖은 智人所居요.
고악아암   지인소거

碧松深谷은 行者所捿니라.
벽송심곡   행자소서

飢餐木果하야 慰其飢腸하고
기손목과     위기기장

渴飮流水하야 息其渴情이니라.
갈음유수     식기갈정

喫甘愛養하여도 此身은 定壞요
끽감애양       차신   정괴

着柔守護하여도 命必有終이니라.
착유수호       명필유종


재물을 아끼고 탐함은 마구니의 권속이요,
자비로 보시함은 법왕의 자녀니라.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 있는 이가 거처할 곳이요,
푸른 솔 깊은 골짜기는 수행하는 이가 깃들 곳이니라.
시장하면 나무 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갈증나면 흐르는 물을 마셔서 목마른 생각을 쉴지니라.
맛있는 것을 먹어서 소중히 길러도 이 몸은 결정코 무너지고,
부드러운 옷을 입어서 지켜 보호하여도 목숨은 반드시 마침이 있느니라.


간탐어물 시마권속(慳貪於物 是魔眷屬) 

 간탐은 물건을 아끼고 남에게 주지 않는다는 뜻. 탐내어 구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이다. 대승 불교의 실천윤리인 육바라밀은 보시를 첫째로 꼽고 있다. 욕심을 버려라, 소욕(小欲)으로 만족하라는 소극적인 면을 떠나서, 이웃에게 보시를 하라 하고 적극적으로 탐욕심에 대응하도록 한다.

 마(魔)는 범어 마라(魔羅, Mara)의 준말이고 우리말로는 마구니. 번역은 장애자(障碍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공부에 장애가 되는 일체의 대상으로, 선법(善法)을 방해하고, 좋은 일을 깨뜨려서 수도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磨) 자로 쓰여졌으나, 양무제 이후에 삼 마(麻)자 밑에 귀신 귀(鬼)자를 결합한 마구니 마(魔) 자를 쓴 것은, 양무제가, 공부에 장애가 되는 것이 마치 귀신이 암암리 작용하여 꼼짝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과 같다고 한 데서 온 것이다. 마군은 불도를 방해하는 온갖 악한 것을 말한다.


자비보시 시법왕자(慈悲布施 是法王子)

 보시에는 ① 재물로써 하는 재 보시. ② 법문을 들려주는 법 보시. ③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 등 세 가지가 있다.

 법왕자는 범어 Kumrabhta의 번역이며 동진(童眞)이라고도 한다. 특히 문수 보살, 미륵 보살 등 보살을 가리켜서 법왕자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법왕이시며, 미래에 부처를 이룰 불제자들은, 법왕의 아들인 까닭에 법왕자이다.


고악아암 지인소거(高嶽莪巖 智人所居)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긴다는 뜻. 산수의 경치를 좋아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취향을 나타낸 말이다.


벽송심곡 행자소서(碧松深谷 行者所棲)

 행자는 입산 행자님이 아니고 널리 구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줄인 말이다. 어쩌면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영원한 행자인지도 모른다.

 옛날 인도에서는 큰 나무 아래서 수행자가 정진하였는데 천상의 신들이 마장을 막아주는 안전지대로 여겨서 그런 것이다. 중국에서는 수도자는 산으로 들어가서 도를 이루는 것이 정형화되었다. 왜냐하면, 도(道)를 이루는 일은 세속을 떠난 초속적인 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산이라야 도를 닦는 곳이다. 도인과 산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도란 평상심(平常心)이며 일상 어디에도 떠나지 않는다라고 대혜 『서장(書狀)』에서는 말한다. 초심자는 아무래도 일상을 떠난 산중이 수행처로 알맞겠지만, 마지막 회향처는 산중이 아니라는 신념이 필요하다. 부처님을 보면, 살아생전 탁발로 중생의 삶과 떨어지지 않으신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일상을 떠나면 그건 이미 도가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라는 뜻이다.


기손목과 위기기장(飢餐木果 慰其飢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을 생각에 두지 않는, 의식주에 매이지 않는 수행자의 자유로운 일면이다. 반대로, 먹고 입고 자는 일로 신경을 써서 반연(攀緣)함은 마치 칡넝줄이 발목을 걸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