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08 10:25
[경전공부방] [능엄경] 능엄경3권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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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능 엄 경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불타의 제자인 아난다(阿難陀)가 마등가 여인의 주술에 의해 마귀도에 떨어지려는 것을 부처(석가)의 신통력으로 구해낸다. 그리고 나서 선정의 힘과 백산개다라니의 공덕력을 찬양하고, 이 다라니에 의해 모든 마귀장을 물리치고 선정에 전념하여 여래의 진실한 경지를 얻어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후의 목적임을 밝혔다. 따라서 이 경은 밀교사상이 가미되기는 하였지만 선정이 역설되고 있기 때문에 밀교 쪽보다는 선가에서 환영을 받아 중국에서의 주석가들은 모두 선문의 비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 육입에 나아가 여래장을 밝힘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 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이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이라고 하니 그 보는 놈의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 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에서 온 것이 아 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로부터 왔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일진댄 반드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 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 지면 머리 속에서 또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 로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놈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 이다.

 

[2] 허망한 것은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들어 깨닫은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 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움직임에 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할 것이고, 만약 고 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고, 만 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러한 듣는 정기가 본래 자 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듣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거든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인데 너희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 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 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쉬어서 오래 들이쉬고 있으면 피로 가 생겨서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 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 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냄새를 맡는 놈 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 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트인데서 왔 을진대 막히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막힘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 데서 왔을진대 트이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트임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일진대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같이 맡는 정기가 본래자성이 없 을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일진댄 냄새를 맡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기면 그 사 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달고 쓴 것으로 인하여 저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 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이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 니, 그 맛을 보는 놈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 라는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3] 참된 것에 의해 허망함을 일으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맛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 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 런가 하면 만약 달고 쓴데서 왔을진대 담담하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데서 왔을진대 달거나 쓰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 게 그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 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 로 맛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 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 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 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 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는 느끼는 그 자체가 없으 리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떨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곧 따라서 없 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 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 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느 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4] 십이처에 나가 여래장을 나타냄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피로하면 잠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을 보면 기 억하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뒤바뀐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 어지는 것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뛰어넘지 아니함 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 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 (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 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 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생기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깨거나 잠자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 는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생기는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 야 하리니 누구로 하여금 없어짐을 알게 하며, 만약 없어지는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깨고 잠자고 하는 두 가지 형 상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생각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생기고 없어지고 깨고 잠자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아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각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지각하 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으로 생각하여 인식하는 것[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 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다시 기타림 숲과 모든 샘물과 못들을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것들은 물질의 모양이 눈으로 보는 작용을 생기게 한다고 여기느냐 눈이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고 여기느냐? 아난아! 만약 눈이 색질의 모양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색질의 모 양이 아니므로 색질의 성품이 응당 사라질 것이다. 색질의 성품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 색질의 모양이 이미 없어지면 누가 허공의 본질(本質)을 밝히겠느 냐? 허공도 역시 그러하니라.

 

[5] 감각기관에 의거하여 밝힘

만약 물질이 눈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물질의 모양이 아 니므로 눈으로 보는 것이 곧 사라져 버리리니 사라져 없어지면 모두가 없어질 것인데 무엇이 허공인지 물질인지 밝히겠느냐?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 가운데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을 모을 적엔 종 을 쳐서 그 북과 종소리가 앞뒤로 서로 연속됨을 들어 보아라.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런 것들은 소리가 귀가에 온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 각되느냐?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귀 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시라벌성에서 걸식을 할 적에 기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귀 가에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 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그 가운데 千二백 五十명의 사문들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밥 먹는 곳으로 모두 모이느냐? 만약 네 귀가 소리나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왔을 적에는 시라벌성엔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엔 그 귀가 이미 북치는 곳으로 갔으면 종소리 가 함께 나더라도 응당 모두 듣지 못할 것이거든 더구나 어떻게 그 가운데 코끼리, 말, 소, 염소 등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더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듣는 것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듣는 곳과 소 리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에서 나는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그 향을 만약 한 수 (銖)만 태우면 시라벌성 四十리 안에서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것이다. 네 생각엔 어떠하 냐? 그 향기는 전단향 나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허공에서 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마땅히 코에 서 나와야 할 것인데 코가 전단이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향기가 있다고 하겠느 냐?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 속에서 향기가 나온다면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 품은 항상한 것이므로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향로에다 이 나무를 태워야 만 향기가 생긴다더냐? 만약 나무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 향기의 본질은 태우므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므로 코 가 냄새를 맡을 적에는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 연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기도 전에 四十리 안에서 어떻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냄새 맡는 곳과 향기나는 곳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 품이니라.

 

[6] 처소는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씩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가지고서 이따금 유병(油餠)이나 밀 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고 하나니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음식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입 속에는 혀가 하나 뿐이니 그 혀는 조금전에 이미 단 맛이 되었으므로 흑석밀(黑石蜜)을 먹게 되더라도 응당 달라짐 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 진다면 혀가 여러 개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서 알겠느냐?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 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맛을 안다고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보아라. 무슨 맛이더냐? 만약 허공이 짠 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하리니 그렇다면 이 세계 의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아서 늘 짠 것을 받아왔으므로 담담함을 알지 못할 것이 다. 만약 담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짠 것도 느끼지 못해서 반드시 아는 것이 없을 것 이니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이 알아야 한다.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 맛보는 것과 맛,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만져서 느 끼는 것은 어느 것이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리니 어떻게 감촉을 느낀다더냐? 만약 머리에 있을 것 같으면 손은 쓸모가 없으리니 어떻게 접촉한다고 하겠느냐? 만 약 각각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응당 두 몸둥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 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한 몸 이라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몸이라면 감촉이 어디에 있단 말이 냐? 손에 있다면 머리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머리에 있다면 손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가 처소가 없어서 몸과 감 촉,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7] 십팔계에 의하여 여래장을 밝힘

아난아! 네가 항상 생각속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 그리고 무기성(無記性) 의 세 가지 성품이 법칙(法則)을 생성(生成)하나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냐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처소가 있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法)은 대상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바가 아 니거니 어떻게 처소를 이루겠느냐? 만약 마음을 떠나서 따로이 방소가 있는篤“?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있다고 하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 가 없다고 하나이다." [7] 항상하다는 것을 징험함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하는 말 이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을 이랬다 저랬다 했다 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들리느냐고 물으니 너는 들린다고 말하였고, 또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으니 너는 소리가 난다고 말하여 듣고 소리가 나 는데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런 것이 어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겠 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 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들리는 대상인 소 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 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너는 아직도 뒤바뀌어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착각하나니 어찌 혼미하여 항상한 것을 끊겼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느냐? 끝내는 모든 움직임, 고요함, 열림, 닫힘, 통함, 막힘을 여의고서 듣는 성품이 없노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적에 그 가족들이 다듬질이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그때에 갑자기 깨어나서 가족 에게 말하기를 '조금전 잠결에 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리니, 아난아! 그사람은 잠결에 어 떻게 움직이고 고요하며 열리고 닫히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하랴마는 그 형체는 비록 잠 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않았나니, 가령 너의 형체가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 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없어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빛과 소리를 따르면서 생각을 좇아 흘러돌 아?보아 아는 경계를 생기 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것이어서, 눈과 빛 그리고 빛의 경계, 이 세가지 가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8] 귀와 소리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생긴 다'고 하나 그 의식은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 냐? 아니면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현상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가 앎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안다는 것 도 오히려 성립됨이 없을 터이니 인식이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약 귀로 듣는 것을 취한 다면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듣는 것이 성립될 수 없으리니 어떻게 귀와 형상이 물 질과 감촉이 섞인 것을 가지고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귀로 인식하는 경계가 다시 어디를 따라 성립되겠느냐? 만약 소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귀가 인식하는 것은 소리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듣 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을 것이니 듣는 그 자체가 없다면 소리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저 인식하는 것이 소리를 좇아 생기고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소리의 모양이 생긴다 고 인정한다면 들을 적에 응당 그 인식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듣지 못한다면 귀가 인식 하는 경계가 아니리라. 듣는 것은 소리와 같아서 의식이 이미 들음을 당하였거니, 또다시 무엇이 의식을 듣는 것인 줄 알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마침내 풀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다. 소리와 듣는 것이 섞이어서 중간의 경계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니 귀가 인식하는 경 계가 중간 위치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어디로부터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가 인식하는 경계를 생기 게 한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귀와 소리 그리고 소리의 경계, 이 세 가 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9] 코와 향기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 는데 그 의식은 코로 인하여 생긴 것 이므로 코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 니면 향기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기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마음 속에 그 무엇을 코라고 하겠느냐? 살로 된 한 쌍의 오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 아는 움직이는 성품이라고 생 각하느냐? 만약 살로된 모양이라고 여긴다면 살로 된 바탕은 곧 몸이고 몸이 느끼는 것 은 곧 감촉이니 몸이라고 하면 코는 아니고 감촉이라고 하면 이는 곧 감촉의 대상이다. 코도 오히려 이름할 수 없거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만약 냄새를 맡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진댄 또 네 마음 속에 무엇으로 안다고 생각하 느냐? 살이 안다고 한다면 살이 아는 것은 본래가 감촉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안다 고 한다면 허공은 스스로 아는 것이라서 살은 응당 깨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네 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할 수 없을 것 이다. 향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는 그 자체가 향기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 겠느냐? 만약 향기와 구린 냄새가 반드시 네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그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오지 않을 적에 네가 네 코를 맡아 보아라. 향기로우냐 구리냐? 구린 냄새는 향기가 아니며 향기는 응당 구리지 않으리니 만약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너 한 사람이 응당 두 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도 물을 적에도 두 아난이 있으리니 어느 것이 너의 몸이더냐?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구린내 두 가지가 아니라 구린내가 이미 향기가 되며 향기 가 다시 구린내가 되어서 두 성분이 있지 아니하리니 경계가 무엇으로 인하여 성립되겠느 냐? 만약 향기에 인하여 생긴다면 그 인식은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눈이 다른 것은 볼 수 있으면서도 눈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하리니 안다면 향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이는 코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향기가 앎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향기의 경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인식하는 것이 향기를 느끼지 못하면 인식하는 경계가 향기로 해서 이루어짐이 아니리라. 이미 중간이 없으면 안팎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저 냄새맡는 성품이 마침내 허망한 것 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코와 향기 그리고 향기의 경계, 이 세 가 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0] 혀와 맛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아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 니 그 혀의 인식은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맛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모든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 계피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네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가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이 어니 무엇이 알아 깨닫겠느냐? 혀의 성품이 쓴 것이 아니라면 맛이 저절로 생기지 않 을 터이니 어떻게 경계가 이루어지겠느냐? 만약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인식하는 걋 스스로 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는 곧 혀와 같아서 응당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맛인지 맛이 아닌지를 알겠 느냐?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여러 가지에서 생기므로 그 인 식하는 것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될 것이며, 인식하는 본체가 만약 하나이고 그 체는 반 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의 화합된 것이거나 함께 생기 는 것과 여러 가지로 변하여 달라진 것이 함께 동일 맛이 되어서 응당 분별이 없을 것이 다. 분별이 이미 없으면 인식한다고 할 수 없거니 어떻게 혀가 맛보아서 인식하는 경계라 고 하겠느냐? 허공이 너의 마음에 인식을 생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혀와 맛이 화합하면 곧 그 가운데는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 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 긴다고 하는 세 가지 처소는 모두 없어서 혀와 맛 그리고 혀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