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9-27 10:29
[사찰문화실] 90) 매향(埋香)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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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들어와서는 매향이라하여 향을 땅속에 묻어두거나 침향(沈香)이라하여 향을 물속에 담가두었다가 후에 꺼내서 사용하는 풍속이 있었다. 재료는 향나무의 심(芯)이었으며, 이는 향의 질을 높이는 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매향 풍속은 신앙적으로는 미륵사상과 연관이 있는데, 먼훗날 미륵불이 강림할 때 설법을 듣고 득도하고자 하는 비원도 깃들어 있다. 고려 충선왕 때 세운 강원도 고성 삼일포의 매향비를 비롯하여 조선 세종 9년(1427년)에 세운 충남 해미의 매향비 등 여러 곳에 매향비가 남아 있다. 매향비의 비문 내용은 주로 불교의 미륵사상을 담은 기원문으로 되어 있다.

  주로 고려 말과 조선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매향은 주로 민중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매향 행사에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매향에 참여했다는 것은 어떤 위상으로든 관(官)이 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삼일포 사선정에서 발견된 매향비의 기록을 보면 강릉 지방의 관리들과 승려 그리고 지방민들이 모여 9개 고을에 매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매향은 주로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행해졌는데, 전남 영광 법성포, 전남 신안 암태도, 강원도 삼척 맹방, 고성 삼일포…… 그리고 얼마 전 문학기행으로 시인 서정주의 고향인 고창군 선운리를 찾았다가 그곳 촌로로부터 줄포 바닷가 개펄에 매향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이 있다. 매향된 향나무는 얼마가 지나면 물위로 떠오른다는 이야기도 촌로는 잊지 않았다. 경남 사천땅 흥사리 마을에도 고려 말 우왕 때 세운 매향비가 남아있다. 이 매향비는 자연석을 그냥 이용하여 매향 당시의 사실들을 비문으로 새겨놓고 있다.  

  매향을 바닷가에서 행한 이유는 향을 바닷물이나 갯펄에 오래 담가두었다가 꺼내서 말린 다음에는 향에서 그을음이 나지 않고 단단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이나 손목에 걸고 다니는 호신부적(護身符籍)도 매향에서 얻어진 향나무로 만든 것이다.